폴네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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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네띠앙소개

폴네띠앙 소개폴네띠앙을 소개해드립니다.

폴네띠앙 폴네띠앙 소개

폴네띠앙 소개

폴네띠앙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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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네띠앙 전야

前夜

세기말과 세기초에 걸쳐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는
기치와 함께 ‘경찰개혁’은 시작되었다...

2001년 7월 12일, 폴네띠앙은 잠정 폐쇄됐었다. 그 사건이 폴네띠앙을 태동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인터넷,그리고 그 인터넷을 경찰조직안에 급속히 확산시킨 이무영청장의 진정한 뜻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세기말과 세기초에 걸쳐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는 기치와 함께 ‘경찰개혁’은 시작되었다. ‘위로부터의 개혁’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의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두 가치는 혼재되어 있던 시기다. 혼란기에는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경찰청과 각 지방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뜨거웠지만 지금까지 ‘침묵의 바다’였던 경찰안에서 제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하였다. 폴네띠앙을 말하고자 하면 그 이전 단계인 PC통신 경찰 동호회 ‘지팡이’ 등과 각 경찰관들의 개인 홈페이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드림위즈(www.dreamwiz.com) 칼럼 홈페이지인 ‘법대로 경찰, 그리고 그 인간의 얼굴’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7월 10일, ‘법대로 경찰, 그리고 그 인간의 얼굴’ 칼럼방이 개설되고 ‘마음에 떠오르는 말들을 적기 시작하며 글을 실었다. 그리고 이 칼럼방의 존재를 경찰 관련 홈페이지 게시판에 알렸다.

『 경찰.. 그 탄생은 자유의 억압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 자유가 방종이든 욕구의 분출이든 또 무어라해도 국가가 생겨나면서 모두가 함께 타협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법이란 것이 생겨나고, 그 법을 강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찰. 경찰은 그 이름 자체에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 공권력의 상징.. 그래서 경찰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원초적인 폭력이 그나마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행사되고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경찰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이다. 아직 로보캅은 없다. 이 글은 그 경찰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될 수 있으면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전할려고 한다. 분노하고, 사랑하고, 절망하고, 희망에 들뜨기도 하는 그들.. 보통사람들이 쉽게 들여다 볼 수 없는 경찰안의 사람들을 바로 옆에서 함께 숨쉬는 사람으로서의 앵글을 잡아보려고 한다. 왜 이렇게 해야되는지.. 모든 글쓰는 이의 의문이겠지만.. 그저 적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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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련 홈페이지에서 각개전투를 하고 있던 경찰관이 이 칼럼방으로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오점규(노마드), 김철현(copkim), 이현철(연변총각), 차재복(차돌이) 이혜옥(로사) 님등이다.
7월 10일 하루동안, 30편의 칼럼이 실렸다. 아래는 폴네띠앙이 왜 태동하게 되었는지 그 일단을 볼 수 있는
글들이다.

관련글

폴네띠앙 태동기

胎動期

“경찰인은 법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나,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바꿔야 한다.
폴네띠앙들이 주체성을 회복하고 나서야 한다. 좋은 경찰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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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인은 법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바꿔야 한다. 폴네띠앙들이 주체성을 회복하고 나서야 한다. 좋은 경찰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폴네띠앙은 번듯한 회칙이나 사전 합의 없이 만들어졌다. 단지 간단한 '깨끗하고 당당한, 주체성있는 경찰로 좋은 경찰 한번 만들어 보자‘는 글귀하나에 많은 경찰관의 공감과 지지를 받고 탄생한 것이다. 현재의 경찰 현실에 대해서 부정적이면서도 경찰에 대해서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 인터넷상에서 하나 둘 자연스럽게 결집하게 된 것이 바로 폴네띠앙이다. 폴네띠앙은 만들어 나가고자 한 사람들과 그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의 공유와 결집, 그리고 참여와 실천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아울러 책임있는 글쓰기와 지식과 정보의 고급화와 발전을 지향하였다. 그래서 훌륭한 논객에 대한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다. 달려라톡기, 허금탁변호사, 프로폴, 상록수, 에펠탑, 아이, 산푸름, 레인저, 박미옥님 등이 그 분들이다.

폴네띠앙 수난기

受難期

입을 가지지 못한 서러움에서 침묵의 바다에서의 격랑을 희망하였기에,
태동기를 전후하여서는 대언론 활동이 초창기를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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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가지지 못한 서러움에서 침묵의 바다에서의 격랑을 희망하였기에, 태동기를 전후하여서는 대언론 활동이 초창기를 장식하였다. 남대문서 출입기자 오줌난동 사건과 연이은 롯데호텔 음주진압 허위보도 사건, 남대문서 여기자대 여경 사건, 현직 경찰관 게릴라 인터넷기자 논쟁, 대우자동차 부평 사건에 대한 왜곡?과장보도 대응, 경찰청장 공개서한 사건 등이다. 이 시기에는 더 이상 경찰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동네북’이 아니라 ‘언론과 맞서면서 상생하는 경찰’임을 자각하고 천명하던 시기였다. 폴네띠앙 태동 1주년 안에 일어났던 사건들이다. 아울러, 조직 내부문제에 대해서 ‘역린’을 서슴없이 건드려 가던 시절이기도 하다. 2000년 7월 31일 대법원 판결로 하루아침에 파면이 된 ‘인천 세형사’ 돕기 성금 모금이 차돌이에 의해 시작되었다. 경찰 역사상 일찍이 보지 못한 밑으로부터의 성금 모금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내에서 ‘적법 절차의 중요성 각성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였고, 폴네띠앙안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9월 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결코 ‘순수하지 못한 모임’이 있었고, 그 성금은 전달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폴네띠앙은 조직안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2001년 2월 14일, 폴네띠앙의 필치는 급기야 지휘권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게 된다. 충주경찰서에서 시작된 이 도전은 이 후에 차돌이 파면과 폴네띠앙 폐쇄라는응전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는 와중에 2001년 3월 3일, 부산 송정바닷가에서 폴네띠앙 최초의 전국 모임을 가졌다. 이후 이 모임은 폴네띠앙의 오프 모임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향후 활발한 오프모임이 시작되었다. 3월 18일, 차돌이는 운명적인 ‘썩은 칼이 아닌 진검으로 승부를’이란 글을 청와대에 띄우게 된다. 이 사건은 4월 29일 오마이뉴스의 경찰청장 공개서한 파문과 맞물리고, 부산지방경찰청의 유연하지 못한 대응(어쩌면 유연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만)으로 경찰청 차원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그런 수난속에서도 2001년 7월 9일 폴네띠앙 1주년 전국 모임을 공고하였다. 7월 15일 전국의 폴네띠앙들이 대전 모처에서 세미나를 겸한 기념행사를 갖기로 한 것이다. 경찰 역사상 초유의 전국 경찰관 집회라는 주시를 받았다. 7월 10일 부산지방경찰청은 보통징계위원회를 열어 차돌이를 파면한다. 이에 대해 폴네띠앙 등 폴네티즌들이 거세게 반발하였다. 경찰청은 비공식 라인을 통해 ‘폴네띠앙 폐쇄와 침묵’을 강압하였고, 7월 12일 폴네띠앙은 잠정폐쇄되었다. 잠정 폐쇄된 폴네띠앙에 대해서 악의적인 글로 숨통을 끊어 놓을려는 시도에 항의하던 폴네띠앙 시삽은 그 다음날 서울청 수사부에서 일선 중대장으로 전보조치되었다. 침묵하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폴네띠앙 부활기

復活期

폴네띠앙은 실제 폐쇄되지 않았다. 하늘님이 몇날 몇일을 밤새우면서 모든 자료를 백업하였고,
게시판은 외부로부터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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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네띠앙은 실제 폐쇄되지 않았다. 하늘님이 몇날 몇일을 밤새우면서 모든 자료를 백업하였고, 게시판은 외부로부터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폐쇄되었다고 모두들 믿었던 7월 14일 밤, 전남, 부산, 경남 등지에서 폭풍우를 헤치며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폴네띠앙들은 강원도 철원의 어느 한 음식점에서 이미 폴네띠앙 1주년 전야제를 시작하고 있었다. 7월 15일 폴네띠앙은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고요함속에서 아침을 맞이 하였다. 폴네띠앙은 없어지지 않을 존재임을 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마침내 9월 18일 폴네띠앙은 다시 세상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차돌이와 함께 ‘불온집단’이라는 누명을 쓰고, 전국 각지의 폴네띠앙은 감시의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그 두달동안 차돌이의 ‘한길’에서 더부살이을 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많은 회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폴네띠앙은 초심으로 다시 시작하였다. 이무영청장이 수지김사건으로 물러나고, 이팔호청장의 시대가 열렸다. 이팔호청장은 부산청장 시절 차돌이의 숨은 후원자이기도 하였다. 더 이상 폴네띠앙을 공식적으로 감시하는 세력은 없어졌다. 전국 각지의 폴네띠앙들중에는 각 부서에서 ‘씽크탱크’로 인정받는 사례도 늘어났다. 2002년 3월 22일 폴네띠앙의 주장중 장신중님의 소재수사 폐지안은 경찰청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폴네띠앙은 불온집단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경찰 정책에 대한 건설적 비판을 청취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공조직내에서 확산되었다.

폴네띠앙 닷컴기

폴네띠앙은 여러 가지 모습을 내재하고 태동하였다.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결집하는 것이 주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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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네띠앙은 여러 가지 모습을 내재하고 태동하였다.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결집하는 것이 주활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폴네띠앙들은 먼저 지식을 연마하고 정보를 수집하여야 할 것이 당연한 의무가 되었다. 그리고 조직 내외부의 다양한 이슈에 동참함으로써 ‘좋은 경찰 만들기’의 오피니언 그룹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성취감과 보람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 보다 한 단계 나아간다면 미래에 폴네띠앙을 통한 퇴직이후의 물질적 성취감과 보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보화사회에 있어 지식과 정보는 이미 재물이다.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집대성하고 가공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경제적 산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폴네띠앙 닷컴이다. 간단히 사이버학원도 열 수 있고, 탐정업 등에 진출할 수도 있으며, 또 탐정 양성 학원을 운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컨설팅 사업도 가능하다. 폴네띠앙안에는 경찰 관련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잘 훈련되고 신념에 찬 사람이 있다. 2002년 7월 14일, 그러한 비전과 다짐을 polnetian.com의 출범으로 가시화하였다. 노병철회원이 직접 제작하였고, 컨텐츠로서의 실험작으로 ‘송기섭교수의 수사실무’를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방영하였다. 그리고 그 출범과 함께 2주년 기념식은 서울 군자동 시삽의 집에서 치루었다. 2002년 8월, 몇 번의 논란이 있었으나, 폴네띠앙 닷컴의 충실한 운영을 위한 정회원 회비제가 실시되었다. 그해 11월 16일, 현직 변호사를 고문변호사로 위촉하여 닷컴의 토대를 완성하였다. 폴네띠앙닷컴시대가 그 이전과 다르다면, 일반회원들에게 폴네띠앙을 공개한 것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을 비롯한 인권단체 등 시민단체 회원, 폭포수님 등을 비롯한 경찰학 연구자 및 학생, 김장환 기자를 비롯한 언론인, 사회학자, 법조계, 그리고 일반시민들의 가입을 허용한 것이다. 폴네띠앙이 경찰의 시각에서만 와류되는 것을 막고 진정으로 국민의 좋은 경찰로 모든 논의의 종국 목적은 국민에게 이롭게 하자는 데 있다는 뜻을 시스템에 이식한 것이다.

폴네띠앙 혁신참여기

革新

국립경찰 최초, 청문회를 거치고 임기제 경찰청장이 된 최기문청장시대에는
폴네띠앙이 경찰조직의 파트너쉽을 인정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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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찰 최초, 청문회를 거치고 임기제 경찰청장이 된 최기문청장시대에는 폴네띠앙이 경찰조직의 파트너쉽을 인정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 이전까지는 폴네띠앙 소리를 분출하였다면, 그 이후에는 경찰청에서 폴네띠앙 소리를 빨아들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적극적으로 정책을 제시하고, 비판하였다. 혁신 메시지 1호는 폴네띠앙 소리가 거의 흡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방에 있던 폴네띠앙들이 경찰청 혁신기획단으로 추천되어 영입되었고, 방범국 순찰지구대 T/F팀에도 발탁이 되었다. 그러나 수난은 폴네띠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모방송국의 순찰지구대 출범 하루만의 어이없는 호도 보도와 대응, 그리고 위험수위를 넘어서는 경찰관련 보도에 대한 경종을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이동환에 대한 모방송사의 1억원의 손해배상 제기, 법조비리에 대한 수사 강행과 언론대접하기에 소흘했다는 이유로 구름따라님의 직위해제 사건이 있었다. 그러한 도전에는 폴네띠앙은 언제나 응전하였다. 손해배상 소송을 계기로 ‘언론 보도의 수위’에 대한 확인을 토대로 ‘나사풀린 경찰’이라는 허위보도에 맞서 ‘대언론피해 경찰관 구제기금’을 마련하였고, 구름따라님은 당당하게 소청을 신청하여 복귀한 후, 자랑스럽게 총경 승진의 영예를 안고 명예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폴네띠앙의 모토중의 하나인 ‘깨끗하고 당당한 경찰 만들기’를 실현하는 경찰청 자정방 참여를 통한 내부 자정운동을 가속화하였으며, ‘경찰 독자적 수법’마련의 토대도 마련에도 동참하였다.

폴네띠앙 가족참여기

家族

2003년 7월 10일부터 12일, 희망과 열정으로 만들어나가자는 모토로 개최된
폴네띠앙 3주년은 실질적인 전국 모임이었다. 가족들도 참여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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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10일부터 12일, 희망과 열정으로 만들어나가자는 모토로 개최된 폴네띠앙 3주년은 실질적인 전국 모임이었다. 가족들도 참여를 한 것이다. 폴네띠앙 태동기때부터 폴네띠앙은 적극적인 참여를 했음에도 그 이면에는 가족들에 대한 죄스러움이 있었다. 데이트를 하면서도 애인을 내버려두고 PC방으로 갔던 폴앙, 퇴근해서 밤늦게까지 컴퓨터 자판앞에서 가족들의 원망을 받았던 폴네띠앙, 휴가를 가더라도 가족들이 재미없어 하는 모임에 참석하던 폴네띠앙. 3주년을 전환점으로 폴네띠앙은 가족들로부터 먼저 지지받는 폴네띠앙이 되고자 하였다. 그래서 3주년은 폴네띠앙 세미나를 하면서도 가족들의 관광을 세심하게 신경써주고, 최고의 시설과 음식, 그리고 여흥을 제공하였다. 그 분위기는 4주년때에도 이어졌고, 앞으로도 영원히 가족들과 함께 하는 폴네띠앙이 될 것이다.

폴네띠앙 비전

發展

폴네띠앙은 고여 있지 않는다. 고여 있다는 것은 곧 소멸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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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네띠앙은 고여 있지 않는다. 고여 있다는 것은 곧 소멸을 의미한다. 2003년 10월 14일을 맞이하여 폴네띠앙 2대 시삽으로 동물원기린님이 추대되었다. '현장에서, 현장의 눈높이로, 현장을 위하여’란 모토가 2대 시삽의 비전이다. 그리고 각 지역별로의 오프모임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중요 이슈에 대해서는 프로젝트팀이 가동되는 체제도 갖추었다. 2003년 12월 29일, 드디어 차돌이님이 대법원 확정판결로 복직하였다. 결코 그냥 주저앉지 않는 폴앙 정신의 승리다. 그리고 거기에 연루된 부서나 사람들에게 일체의 댓가를 추궁하지 않기로 하였다. 폴네띠앙은 화해와 사랑의 결집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서하되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똑같은 일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다. 폴네띠앙의 비전 제시와 실천은 계속된다. 국가배상법에 대한 문제 제기와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한 여론 환기, 피살 경찰관 조문 및 49재 전국 경찰관 추모대회, 경찰공제회에 대한 개혁 촉구 및 대의원 출마, 경찰보수 현실화 연구 보고서 제출과 여론화 시도, 검사직무대리제도에 대한 문제점 제기와 무력화, 수사권 배분에 대한 의견 개진과 바로 알리기, 불심검문 등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논의 적극 참여, 인권, 적법절차, 그리고 공권력 확립을 위한 윈윈전략 수립..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면서 현장의 문제점을 발굴하여 연구하고, 가능한 실천 대안을 창출하고 경찰정책에 입안되도록 노력하는 폴네띠앙! 그 행보가 아직은 낯설은 조직 내외인에게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가는 길은 신중하면서도 과감하다. 그리고 영원할 것이다!

폴네띠앙 닷컴기

2005년 7월 15일 전남 화순금호리조트에서는 폴앙가족 500여명이 참석하여
pride of police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5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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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5일 전남 화순금호리조트에서는 폴앙가족 500여명이 참석하여 pride of police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5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다. 경찰회원뿐만 아니라 시민회원인 인터넷 닷컴 데일리서프라이즈 논객이신 산맥처럼님과 종사관님이 함께 참석하여 폴앙의 외연을 넓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창경 60년 경찰의 숙원이던 경찰의 수사권독립이 시기적으로 대내외적으로 가장 분위기가 무르익어 폴네띠앙은 사법개혁네티즌연대와 함께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경찰의 수사권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2005년 8월 17일 현직경찰관으로서 최초로 죽림누필, 금검무적,닥템과 사법개혁네티즌이 X파일 수사촉구를 요구하며 경찰청앞에서 촛불시위를 하였다. 2005.년 9월 8일 국회에서는 폴네띠앙과 사법개혁네티즌연대는 '사법제도개혁을 위한 시민, 네티즌 대토론회' 를 개최하여 시민 경우회 그리고 폴네띠앙과 경찰관등 5000여명이 운집하는 행사를 성대하게 치루어내었다. 이후 경찰수사권독립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 민감하게 돌아갔고 또한 경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검경수사권조정을 위한 입법공청회, 종사관님의 영주경찰서 10월12일 수사권조정관련 순회 강연이 이루어졌고, 사법제도개혁과 형사소송법 (개정)입법청원을 위한 100만 서명 운동으로 경찰의 수사구조개혁을 위한 힘찬 행진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경찰공무원법 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가 국회에서 2005년 10월 27일가 열린 가운데 폴네띠앙은 근속승진 또한 우리 경찰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며 전국에서 모여 참석을 하였다. 현장속에서도 폴네띠앙은 다시한번 그 진가를 발휘한다 부산APEC준비 관련 동원근무자들의 열악한 숙식관련 하여 크레타군주가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여 소기의 성과를 내었다부끄러운 경찰의 과거를 반성하여 현재의 경찰의 위치를 점검하고 선진미래경찰도약을 위한 한국경찰60년사발간을 위해 편찬위원인 낮은계단님이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경찰청 생활안전국의 순찰전문화에 따른 여파로 서울관악서 김해운 경장의 과로순직이후 현업부서 근무여건개선을 위하여 낮은산, 불사조, 하늘, 저릅대가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결과적으로 현장근무여건개선을 위한 T/F팀이 구성되어 근무여건개선을 위한 논의를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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